청주 고인쇄 박물관 홈페이지 관리좀 하세요.

과제가 '고향에서 있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_-
청주를 대표하는 고인쇄에 대해 영문으로 들어가서 찾아보는 순간................................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ㄱ-

문제점 1 : 한글 표기는 도대체.... 저거보고 어찌 이해합니까 ㄱ-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문제점 2 : 가격이 도대체 / 로 표기되는건 어느나라 돈을 표시한 것인가요?

문제의 그 웹사이트


-_- 이거 수정 안될려나....이건 뭐....................................성의없는거 정말 표나네요.

오타도 눈에 띄지만 넘어가렵니다.... 다른걸로 바꿔야 하나 ㄱ- 출신을 서울이라고 해버릴까;

또 찾아냈다.................OTL


이거 영문 사이트 아니라고 누가 말해주세요 -_-!! 좀!!!!!!!!

반박하려는 글쓰려다가 늦은밤인 관계로...-_- 다음에; 쓰렵니다.
좀 매우 많이 어처구니 없음.

by 수현 | 2008/05/22 14:43 | 트랙백 | 덧글(0)

향수병

여기 온지 벌써 3개월째입니다.
자취생활만 4년이상을 한지라-_- 이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희미한 기억속에 머무른것이 전부입니다.
미국에 와서, 현실에 적응하려고 정신이 없는 과정이기에 잊고 지냈습니다.

이제 좀 안정이 되고 나니
눈만 감으면 학교라든가, 친구들이라든가, 대학교때 지냈던
그 곳의 공간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서 미칠것 같습니다.
(가족과는 화상대화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영어도 제대로 못한채 한국에 가면 어떻게 될까요?
이 생각을 하게 되면 막막해지니까. 그나마 향수병을 줄이는데엔 특효인것 같습니다.
한국에 정말 가고 싶지만, 전 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너무나 모자라기에...

I'LL JUST GO HOME, BUT I CAN'T GO HOME.
이란 문구를 수업시간에 배웠는데 정말이지 이만큼 공감이 가는 영어 문장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더욱 슬픈건
인터넷으로는 정말 손에 잡힐듯이 보이지만, 닫고나면 여기는 외국이니...

하지만 힘내야겠죠.
내일도 여섯시 반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고
봐도 보이지 않는 문장을 읽으면서 씨름을 하면
언젠간, 정말 제가 영어를 잘해서 한국에 돌아갈 날이 있겠죠?

이제 3주뒤면 제가 다녔던 학원도 옮기는데
조금 더 힘내서 공부한다음에 다른 분야에 뛰어들어가봐야겠어요.
여기에서 향수병으로 힘든것도 오늘로 끝이었음 좋겠지만, 안되겠죠?

아.
한국가고 싶다아.

by 수현 | 2008/05/21 12:54 | 트랙백 | 덧글(2)

이래서 여기에 있다.

요새 블로그를 보니 20대라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20대라... 과연 우리를 지칭하는 것이 무엇일까.

초등학교때는 참 꿈도 많았고, 하고 싶은것도 많았다. 
졸업 직전에 IMF가 터졌다. 마침 LG반도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었는데 친구들 아버지 중 절반은 실업자가 되었다. 나라가 위기랜다. 왜 위기인거지? 라고 물어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어렵댄다. 외환위기가 뭔지 왜 TV에선 IMF라는 영어를 보여주면서 왜 그렇게 난리를 치는건지, 왜 물가가 갑자기 폭등해서 예전에 샀었던 금액으로는 택도 없이 가격이 올라가는지에 대해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 아버지가 실직하고 근심에 가득찬 친구들을 보면서 왜 우리는 이런일을 겪어야 하는지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우리들 수준에서 대답해주는 어른은 없었다. 정말 직장이라는 것은 중요하구나, 직장이라는 것이 없으면 얼마나 어려운지 주위 친구들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뭔가. 뭔가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그때-_- 생각한건 지금 집권당은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까지 우리가 힘들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왜? 왜? 왜?

 중학교에 오니 IMF에서 조금은 자유로와졌다. 
이젠 내 앞길이 문제였다. 인문계 고등학교 입시시험(연합고사라고 해서 있었습니다.)을 준비했어야 했다. 연합고사만 끝나면 자유인줄 알았으나 이건 왠걸-_- 이젠 대입이란다. 고등학교때의 기억은 아침7시반까지 학교를가서 밤12시까지 오로지 대학교를 가기 위한 일념으로 미친듯이 공부한 기억밖엔 없다. 그 당시 일기를 들추어보니 대학교에 가면 이것저것 해야지. 어떻게 하고 싶다라는 나의 소망이 한줄 한줄 적혀있었다. 책도 많이 읽어보고, 봉사활동도 하고 싶고, 이제 성인이 될 나에게 주어진 여러 책무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래도 10대 때의 난 꿈이라는 것을 갖고 살았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월드컵이라는 것도 겪어보고, 반미에 대해 한번은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갔다.
남들보다 학비 저렴하다는 학교에 들어가서 4년학비를 천만원 미만으로 낸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등록금에 신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2살터울로 있는 동생들을 보면서 왜 우리는 꼭 대학이란 곳을 나와야 하는건지에 대해 고민도 해보았지만, 이미 세상의 커리큘럼은 대학을 요구하더라. 대학교에 오니 맥이 '탁' 풀려버렸다. 너무나 많은 자유가 주어진 탓에 무엇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말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내 삶에 대해서 고찰해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부러 다양한 활동도 많이해보고, 신문도 많이 읽고, 이런 저런 포럼에도 참석해보면서 내 나름대로 가치관을 적립하기 시작했다. 현정권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편이다. IMF때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가...-_-?

취업이 문제다.
이념이든 뭐든간에 지금 난 이제 먹고 살 준비를 해야 한다. 4.0이 넘는 스펙, 자격증, 토익...등등등... 공부만 하라는건가? 내 전공은 행정학이다. 대부분의 내 친구들은 행시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여기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었다. 사실 행정학이란 학문은 정말 매력적인 학문이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 시야가 커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사회구조현상에 대해서도 사회과학분야가 아닌 학생들보다는 조금은 다양한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
2~3년이나 투자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일지. 그 2~3년이라면 다른것을 접하면 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갖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꽉 막힌 수험생활을 다시 하는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직장을 잡는다는 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는것인지. 그렇게 2~3년이란 시간을 시험준비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계속 찾고 있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것일까...

그래서 미국행을 감행했다.
이 영어 실력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부모님에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토익을 필수로 하는한 절대로 취업을 할수 없음을 알기에 눈물을 머금고 1년간의 뒤쳐짐을 감안하고서라도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직접 보고 싶었다. 이때 아니면 더이상은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 사회구조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드물다는 것을. 나중에 지금 미국행을 감행할 돈이 생기더라도 과연 시간적 여유가 될지 의문이 들었다.

여기에서 와서 느끼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
과연, 1년이 지난 다음에 내가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는 아직 나도, 그 누구도 모르지만 인생의 전환점이 될것은 확신한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이 나라에 대해서 연구를 해볼까. 그러면 우리나라도 훨씬 더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을 할수 있겠지.

by 수현 | 2008/05/11 08:42 | 트랙백 | 덧글(1)

밖에서 한국을 보다.

한국에서는 지금 미국의 소고기로 난리도 아닌것으로 안다.

그런데 정작 미국에 있는 난,
단 한번도 외국인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없다.
뉴스에 단 한토막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달까.

올림픽 토치가 한국에 왔을때 충돌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선 다루어 주지 않았다.

정말 이해가 안가는것은
내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마찬가지로 올림픽 토치가 지나갔었는데
protest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자유로운 도시 샌프란에서는 티벳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여러 시위가 있었고 전날에도 UN Plaza에서 대규모의 반대 집회가 열렸으며,
이 때문에 올림픽 토치가 경로를 바꾸는 헤프닝까지 있었다.

거기에 샌프란시스코는 세계 최대의 차이나 타운이 있는 곳이다.
여기는 찬성과 반대가 같이 한 곳에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력적 충돌은 없었다.
다툼이 있는건 보았지만, 그렇다고 주먹다짐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정말 유감스럽기 그지 없다.

지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 불신이 높은걸로 안다.
근데 여기에서 상황은 어떠한지 내가 아직 주의깊게 관찰을 못했으나,
레벨업-_-테스트 보고선 본격적으로 미국이란 나라가 어떠한지에 대해 분석을 해봐야겠다.

다른 나라로 어학연수를 갈 수도 있었으나
내가 미국이란 나라를 택한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 전공이 시작된 곳이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관심사가 여기에 있는데 다른 나라를 어찌 선택할 수 있었을까.



근데 인터넷으로만 우리나라에 대해 접하니까 정말 복잡하구나...

by 수현 | 2008/05/09 09:53 | 트랙백 | 덧글(0)

각각 다른 국적 4명이 한집에서 살고 있음.

미국에 왔다.
이사를 얼떨결에 2개월만에 3번이나 했는데,
우여곡절끝에 구한집은-_- 참으로 저렴한 가격에 룸메이트도 좋더라.

룸메이트 이름이.. 참으로 길어서 어디이려니 했더니
베네수엘라 출신이랜다.

베네수엘라.....-_-
미인들 많은곳이랑 차베스 대통령 밖엔 모르는데;
살다 살다가 이젠 정말이지 극단적으로 나가는구나-_-

그러고 보니 예전에 첫 룸메이트는 동남아시아-베트남이었지.
여기에서부터 내 룸메이트는 다국적국가로 시작했었다.
그다음엔 타이완, 그다음은 한국, 그리고 지금 베네수엘라....

어쨌든 잘 살고 있다. 주말마다 맨날 같이 놀러다니고 ㅋㅋㅋ



지금 미국온지 3개월째로 넘어가는데
난 그동안 우리 집주인 아주머니 출신도 모르다가 룸메이트에게 물어봤다.


-_-


엘살바도르랜다.



여긴 또 어디여....


지난번에 과테말라 출신 아저씨에 이어서 또 충격이구나.

그러고 보니 한집에 4명이 사는데 국적이 다 다르다.
미국이니까 가능한거겠지-_-싶다.

by 수현 | 2008/05/04 15:35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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